예수만 바라보라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4-47)
녹취자: 도현정
본문은 그 유명한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이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설교하는 것은 저의 의도가 아닙니다. 식사하시는 예수님께 한 여자가 불청객으로 찾아와서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당시 향유는 재산축적의 수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여자는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모았고 아마도 그 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처럼 그 돈으로 산 향유를 모두 깨뜨려서 예수께 다 부어버렸습니다. 여자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이 사건을 두고 예수를 청한 그 바리새인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마태복음 26장에도 한 여자가 옥합을 깨뜨린 이야기가 나옵니다(마26:7-13). 이 기사를 누가복음의 기사와 동일한 사건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동일한 사건으로 본다면 오늘 이 본문에는 없는 대화가 마태복음에는 기록이 되어 있는데, 다름 아닌 그렇게 비싼 향유를 왜 붓느냐고, 차라리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그랬냐고 꾸짖는 제자들의 태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시종일관 대사가 안 나옵니다. 오직 나오는 것이라곤 섬김과 눈물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우리 인생에서 환경은 늘 변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아서 아주 보람 있게 사역하는 때도 있는가하면 때로는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정당하게 인정을 못 받아서 힘든 사역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명을 받은 사람은 사람을 보면서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 여자는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가 내 향유를 가지고 내가 붓는데 너희들이 보태어 준 것이 있느냐?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고 싶다면 네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라고 한 방 날릴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말을 안 하고 침묵합니다. 대사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기록된 말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지 그 여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오직 눈물 밖에 없습니다.
드디어 우리 주님이 이 일에 대해 최종적으로 판결해 주십니다. 이 여자가 행한 것이 옳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 26:13). 그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화를 입고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그 사랑 때문에 깊이 감화를 받고 그것 때문에 예수께 매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왜 모이셨습니까? 매해 새해가 되면 이렇게 기도회로 모이는데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생업의 수단으로 열린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기 자체가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의 은혜가 있어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사명이 있기에 우리는 열린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살아가면서 우리가 항상 사람에게 인정받습니까? 항상 내가 원하는 삶의 상황이 됩니까?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눈물로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예수의 편에 선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못 받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까? 그리고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또 그렇게 큰 것입니까? 그것이 정말 생사를 주관할 정도가 되고, 신앙의 정조를 내팽길 정도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보다 더 큰 그 어떤 엄청난 것이 이 세상에서 주어질 수 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느냐를 명심해야 합니다. 큰 교회, 좋은 대우, 사람들의 칭찬, 내 일에 대한 보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면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을 때는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하고, 일에 보람이 없을 때에는 때려치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횡포를 부려야합니다.
그러나 진짜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은 침묵합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습니까? 자신이 향유를 바치는 데에 제자들이 뭘 도와주었습니까? 교회 돈을 아낀다는 사람들이 헌금을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늘 교회의 돈을 아껴야 한다고 합니다. 온 교회의 애정을 혼자 가진 척 합니다. 이건 허위입니다. 자기희생이 없는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거짓입니다. 자기가 먼저 땀을 흘려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땀을 흘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도대체 제자들이 이 여자가 옥합을 깨뜨리는 일에 무엇을 했습니까?
이 여인이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마태복음 26장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여인은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의 말에 대해 한 칼에 날려 버릴 수 있었으나 침묵합니다. 말할 때가 있는가 하면 침묵할 때가 있고, 싸워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잠잠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여자는 때를 아는 여자였습니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관심이 없습니다. 조용히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300 데나리온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0만원이 넘는 액수임-이나 되는 향유를 주님께 한 번에 부었습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계산하지 않고 부었습니다. 수많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런 것에 아무 지장 받지 않고 주님을 조용히 섬겼습니다.
주님은 비난하는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모든 상황에 대해 한 번에 판결하셔서 이 여자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수없이 죽을 결심을 했습니다. 죽음을 예찬하는 사람이었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또 아침에 눈 뜨는 것 자체가 시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삽니다. 그러니 어려움을 안고 사는 것을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지만 나중에 다 흩어질 사람들입니다. 내년이라도 내가 떠나면 여러분들이랑 헤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전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서로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만났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동기가 되어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서 그분이 허락하는 동안에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단 하루도 눈 뜨고 싶지 않은 2년의 세월이 보내면서 뼛속 깊이 박힌 것이 있습니다. “내 인생 이후로는 예수 이외에는 내 인생을 흔들어 놓을 사랑의 대상을 가지지 않겠다.” 여러분들이랑 헤어질 결심도 했습니다. 예수님 한분을 바라보니까 삶이 무지무지하게 단순해집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고 붙들었던 것들이 지푸라기에 불과했습니다.
아우라있게 삽시다. 당당하게 삽시다. ‘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예’라고 하고, ‘아니오’라고 말해야 되는 것에는 ‘아니오’라고 이야기합시다. 여기에서 지나가는 것은 다 악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제게 보여주었던 여러분들의 비겁한 태도 혹은 용기 있는 태도를 일생동안 가슴에 기억하겠습니다. 이 폭풍이 지나가면서 여러분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사는 사람이 아닌가를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모두 회개하고, 예수 한분이 여러분들이 숨 쉬고 사역하는 근원이 되시기를, 예수 한 분 때문에 죽고 사는 이 여자와 같은 이유를 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