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2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전1:16)
지난 시간에는 세월은 다 흐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도 사라졌지만 그러나 지금도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는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여 말하는 것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자가로부터 들려오는 첫 번째 음성은 우리가 바로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즐겁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이 전혀 기쁜 것도 아니고 반가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예화)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떤 음식점에 들어가서 그 하루 종일 다리가 붓도록 고생하는 여 종업원이 물 떠다 주랴, 반찬을 떠다 주랴, 수건을 갖다 주랴, 식당에 가서 밥 한번 먹으려면 우리는 네 번, 다섯 번씩 심부름을 시킵니다. 언제부터인지 저에게는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역시 다섯 번, 여섯 번 제가 본의 아니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여종업원처럼 보이는 젊은 아줌마가 너무 안 돼 보여서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었습니다. 수고했다고 주었더니 눈치가 틀려요. 다른 종업원들 같으면 그 천원을 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럴 텐데……. 천 원짜리를 주었는데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하더니 돈을 가지고 쭈르륵 계산대로 가더니 돈 통에 툭 집어넣는데 그때 제 머리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것이 이 사람이 종업원이 아니라 주인아줌마였습니다.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마치 그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나보다 훨씬 부자일 텐데……. 후줄근하게 생긴 사람이 와가지고 한육천원어치 밥을 먹고 천원을 팁으로 주는 것이 아니꼬웠을 것이라고 돌아서면서 몇 번을 후회를 했습니다. 이 천 원이 어딘데 저 사람 괜히 내가……. 그런데 돈 많은 주인이 그렇게 얼굴이 꾀죄죄하게 생겨가지고 그래서 종업원으로 착각을 했을까? 그런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도 그 구원이 참 기쁘고 감사한 제목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처지에 있는 비참한 인생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너희를 용서하셨다고 해도 감격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때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말할 때 감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죄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집에서 기르던 어린양 한 마리를 깨끗이 씻어서 안고 성전에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손을 얹고 대제사장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고백할 때에 이미 죄인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왜? 거기는 불이 타고 짐승을 죽일 수 있는 도구들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이죠. 죄의 고백이 끝난 다음에 그 짐승을 향하여서 말하자면 처참한 죽임이 가해지는 것이에요. 그 하얀 양털이 시뻘건 피로 물들고 그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그 비참한 짐승의 처참하게 죽어가는 그 모습……. 하나님 앞에 그것을 제사로 드릴 때에 곱게 죽인 것이 아니라 죽여서 처참하게 각을 떴습니다. 눈앞에서 자기를 알아보던 양이 혹은 소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가고 피가 도랑처럼 흐르는 그 현장에서 피가 이리저리 튀고 배설물들이 쏟아지고 그 짐승의 고기들이 이리저리 분해되고 하는 그 처참한 모습 속에서 불태워 제사를 지낼 때 그 역겨운 냄새가 온 성전에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죄인은 가슴을 찢으며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태어나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어가는 것이죠. 그 죄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지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예비하셨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죄인들을 향한 죽음이 얼마나 무섭고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려서 그 구원을 사야할 절박한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이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하고 이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크고 놀랍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서 더 깊이 깨닫고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결국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수시로 이 세상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의 결국을 성경만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도 보여줍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살다가 마지막에 죽어가는……. 하나님 없이 인생의 뒷전으로 죽음으로 가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도 인생을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생은 단순히 허망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치열하게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지옥불 속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이 영원한 고통을 치러야하는 불 못이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니 더 정확하게 해서 이미 죽어있었던 그 죄인들을 살리시고 용서하신 표적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오늘 이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두 번째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곳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유심하게 살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에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경배와 찬양을 올렸고 찬란한 별빛이 그리스도 예수를 나신 곳으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했습니다. 누가 어느 아기가 그렇게 기적 속에서 탄생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도는 동방박사들 앞에 나타났던 그 놀라운 별빛을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변화 산에 올라가서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희어지고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교통하며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의논하던……. 영광스럽던……. 그래서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세상도 잊어버리고 나도 잊어버리고 오직 이곳에서 초막 셋을 짓고 우리가 여기서 살자’고 하던 그런 황홀경으로 이 제자를 놀라게 하였던 변화 산을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굶주리고 가난하고 아직까지도 고통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여명을 먹이고 남았던 뱃세다 광야의 오병이어의 들판을 자랑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다시금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영적인 회복을 주셨던 갈릴리 바다도 자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것,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가난하지 아니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부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이 왜 뱃세다 광야를 자랑하지 않았을까요? 병이 들어서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치유 받고 나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소망입니다. 주님은 병든 자와 각색병자를 고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고 그랬다면 베데스다의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했을 텐데…….
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뱃세다 광야에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배불렸던 모든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도 살만큼 살고 인생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베데스다에서 치료받고 갈릴리에서 치유 받았던 예루살렘에서 고침을 받았던 수많은 병든 사람들과 비참한 인생들은 결국은 그렇게 치유 받고 고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고 누린 모든 것들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모두 끝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는 천국에서도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로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비참하게 멸망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에 사도가 이 십자가를 자랑하기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에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음을 사도가 알았기 때문에 사도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보다도 오로지 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는 말합니다.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였는데 그런데 어떻게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능하게 하시고 충성되게 여기셔서 그에게 직분을 맡기시고 전에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으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귀한 사도로 바뀌게 되고 인생이 전환되게 된 그 놀라운 근거가 바로 십자가였다고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때문에 자기의 인생이 바뀌었고 십자가 때문에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이 오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십자가는 오늘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생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던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그리고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그것과는 관계없이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 골고다언덕에 굳건히 서서 오늘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 십자가를 통해서만 너희는 내 앞에 나아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천하의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죄인중의 괴수이던 바울에게 어떻게 이런 사랑이 나타났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사도는 오늘 이 편지를 쓸 때에 이미 인생의 말년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면 순교의 종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순교를 맞이하고 그리고 죽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하는 사형수의 신세로 이 편지를 적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자기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래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가 철들 때까지 참으셨다면 철이 든 후에는 그래서 바리새파 종교지도자의 꿈을 꾸었던 시절에는 버림을 받아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오래 참으셨습니다. 심지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잔해하고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 스데반이 죽을 때에 가편 투표를 하고 그 옷을 지켜 증인이 되었을 때에도 그리스도는 참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께서 참지 않으셨다면, 그 진노를 우리에게 쏟아 부으셨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소망이 없이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리고 주를 고백하고 주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이라고 하는 사실을 고백할 때까지 주님은 참으십니다. 우리가 또한 제대로 예수를 믿고,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을 할 때까지 주님은 참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참으시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냥 참으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열심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예수 믿게 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권고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화평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며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끄십니다. 수시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끄시고 그래서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사도와 똑같이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의 인생의 뒤를 돌아보면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도가 된 이 바울이 인생의 말년에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뒤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것은 모두 버렸습니다. 영예도 버리고 그리고 장래가 보장된 신분도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도 버렸습니다. 동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돌이켜볼 때에 그에게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울에게 네 인생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볼 때에 이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내게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나를 용서하셨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크게 보이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커 보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소망이 없는 죄인이고 그리고 희망이 없는 비참한 인생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은혜가 한없이 소중해 보이는 법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오래 참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은 이 바울을, 이 사울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모든 것을 판단하실 수 있는 주님이 사도 바울의 인생을 보셨습니다.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이었던 인생을 보셨습니다. 그는 잘못된 진리를 붙들고 그 확신을 전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로부터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대제사장의 공문을 청해서 달려가고 있을 그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지배했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러 가는 이 어리석은 죄인 사울의 속에 깃들여 있는 사악한 마음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무지 가운데 둘러 싸여 있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 열심을 가지고 오히려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 영혼 바울에 대한 긍휼히 여기시는 연민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긍휼히 여기는 이 마음은 모든 논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속에 가득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잘못한 것과 잘한 것과 그가 이런 긍휼을 입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모두 잊어버리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사랑은 그런 것들을 묻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오래 참아줄 만한 그러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느냐 이 물음을 물을 때는 이미 그것은 순수한 긍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하나님이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 증거는 그리스도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하신 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으로 오실 때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들을 ‘너는 낮고 천한 이 세상으로 내려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 말씀하셔서 그 아들이 그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오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영광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광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는 죄와 슬픔이 가득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그리고 거룩하심에도 불구하고 불의하고 더러운 인생들과 사시는 것이 그분에게 있어서 얼마나 커다란 고통이었겠습니까?
하늘의 영광의 보좌와 천사의 창화하는 합창소리를 버리고 그리고 낮고 천하고 슬픔이 많고 그렇게 그 세상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생명을 버리기 위해서 오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환영하지 아니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핍박과 결핍과 고난으로 얼룩진 30여년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이런 생애를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즐거움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그리스도는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에 매달리기 전에 마지막 밤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의 시간들을 대부분 채운 것이 바로 이 세상에 두고 가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문제된 것이 아니라 그토록 사랑하면서 여기에 두고 가야했던 사랑하는 백성들인 우리와 그리고 교회와 제자들을 향한 기도였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무엇이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까? 분명히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살아가고 그 죄로 말미암아 당연히 받을 결과를 받았기 때문에 병들고, 죽어가고, 그리고 이 세상에 죄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 하던 그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부르셔서 구원을 필요로 함을 그들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그들에게 참답게 하나님 앞에 생명을 누리고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자기의 몸을 깨뜨려 버리심으로 사랑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 때문이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만 우리 아들이 백일 되던 때에 그 다음 주인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그 아이를 안고 세례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때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가슴깊이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한손에 안고 한손으로 나누어지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누어지는 잔을 마셨습니다. 떡이 들어가서 내 입에서 씹히는 동안 ‘이것이 바로 내 품에 있는 이 아들의 살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이 세상에 구원을 위해서 죽기까지 내어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 저밀 정도의 슬픈 사랑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향해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아버지가 높은 하늘의 보좌위에서 낮고 천한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건강과 시간과 모든 것을 다 드렸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일생을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한 번도 웃으신 기록이 복음서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웃을만한 것이 없는 세상을 사셨던 것입니다. 눈 뜨면 도움을 받기위해 몰려오는 수많은 병자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을 안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비참한 무리들 속에서 아무도 이들을 구원할 자가 없고 도울 자가 없는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비참함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궁극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하나님을 떠난 죄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는 웃으실만한 환경을 보지 못하고 사셨습니다. 늘 그 속에서 가슴 아파하고 그리고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의 시간과 건강을 다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을 섬기고 이스라엘 백성과 영혼들을 섬기면서도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나무채찍에 맞은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겸손하게 내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우리들이 그 치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으로 말미암아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그리고 정신병자가 나음을 받게 되고, 귀신들린 자가 고침을 받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누렸던 그 잠시 동안의 큰 기쁨과 그 놀라운 해방의 은혜는 다가올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그리스도 앞에 갈릴리에서, 데가볼리에서, 요단강건너 사면에서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앉은뱅이가 되어서 떠메어서, 소경이 되어서 지팡이를 짚고나온 그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고 있는 비참한 영혼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병든 자를 고치고 주린 자를 먹이는 것 가지고는 만족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완전한 생명을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완전한 용서를 받아내야 했습니다. 완전한 용서만이 완전한 화해가 가능해지고 완전한 화해를 통해서만이 완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남은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악한 자들의 손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누우셔서 손과 발에 못 박혀 하늘 높이 달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누구이든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 메이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신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의 이름 석 자를 들을 때에 목 메일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이름 석 자를 들을 때에 그가 누구이든지, 어떻게 살았든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지, 지난날 어떻게 하나님을 거슬리고 그리고 반역하는 삶을 살았든지, 오늘 마음속에 무엇을 원하든지, 심지어는 이렇게 너희 이름 석 자를 부르며 목 메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몰라주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는 오늘 여러분의 이름 석 자를 들으실 때에 목 메이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름 석 자가 떠오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목 메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목 메이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 어디에 있겠으며 목 메이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그 사랑 앞에 사함을 받지 못할 죄가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가 바로 그러한 사랑을 오늘 이 사도에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비록 이 사람이 성경을 쓴 사도라고 할지라도 자기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목 메이는 사랑을 완전하게 다 기록했다고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사랑은 성경에 기록된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요한도 말하기를 그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록하려면 이 세상이라도 그 둘 곳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다를 먹물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다 쓰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한 그 사랑에 눈이 머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 목 메이는 사람 그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그리스도 예수는 죄인을 부르시는 음성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가고 모든 마음과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은 넘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깨어난다고 하는 것, 복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 것,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러한 죄인들을 향한 목 메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소유하고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나서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고,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예수의 무한한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의 무한한 은혜를 말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놀라운 그리스도 예수의 무한한 은혜 반대편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분 그 놀라우신 가슴에 우리의 이름 석 자를 부를 때 목 메이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인생들은 어떠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과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목 메이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그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예수 그리스도를 뵙기를 사모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들도 너무나 자주 하나님을 기뻐하지 아니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하여 우리의 이름 석 자를 부를 때 목 메이는 연민과 그리고 복받치는 그 사랑이 설움으로 변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짝사랑으로 버려둘 것입니까? 사도는 오늘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의심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바울 같은 죄인중의 괴수를 구원하고 오늘도 저를 구원했습니다. 신앙이 없고, 소망이 없는 이 비천한 인생을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도 우리의 이름 석 자를 부를 때 복받치는 설움 맺힌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가 내가 그리스도를 향한 태도를 좌우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내가 무엇을 받았는가하는 사실이 오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의 태도를 좌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에게는 우리의 이름 석 자 우리 자신이 바로 기쁨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앞에 모든 성도는 존귀한 자요 하나님은 그래서 성도들이 죽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짐승과 같은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수준이나 우리의 상태나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평가하고 생각하거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우리의 이름 석 자에 목 메이시는 것입니다. 왜? 그분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우리의 이름 석 자……. 우리가 그리스도께 무엇을 해주고 있느냐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그 놀라운 사랑 때문에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에 목 메이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가득 찬 죄인을 향한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는 말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나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나를 이제껏 참으셨고 결국은 그 사랑이 승리해서 죄인 된 나를 부르셔서 이전에 핍박했던 도를 전하게 하시고 이전에 미워하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오늘 사도가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골고다 언덕에서 들려오는 십자가의 두 번째 음성을 우리는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과 사귀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죄의 담이 아무리 높아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 나오는 XX 그리고…….
(찬양)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심으로 함께 갈라진 휘장과 그리고 그가 아낌없이 피를 흘림으로 새롭게 만들어주신 보좌 앞에 이름을 새롭고 산 그 핏 길을 따라서 단지 호렙 산 광야에서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라.’ 말할 때에 신발을 벗고 그 앞에 섰던 모세와 교통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자기의 모든 의를 다 버리고 그리고 맨발로 십자가를 향하여 그리고 보좌를 향해서 그 핏길을 걸어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보배피를 흘리오니 아버지 죄인을 받으시옵소서!’ 말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목 메이시던 그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 선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리고 늘 이 십자가를 보며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을 받은 이 놀라운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그 감격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가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리스도와 이웃과 하나님의 교회와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드리고 섬기면서 그렇게 섬길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놀라운 사랑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잠시 있다가 지나갈 이 인생을 살면서 이 인생의 대합실에서 우리는 주님의 나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때까지 피 묻은 십자가를 가슴에 부여안고 죄인들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