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녹취자 : 조복령
I. 본문해설
본문은 산상수훈에 나오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실린 교훈입니다. 특히 하나님 자녀들의 기도생활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완전한 팔복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상태가 불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항상 가난합니까? 언제나 눈물로 애통합니까? 은혜 받을 때 온유했던 사람도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강퍅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팔복의 사람이 되셨고, 언제나 팔복의 사람으로 계셨습니다마는 우리는 팔복의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항상 저절로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팔복의 사람은 끊임없이 그 팔복의 상태를 이상으로 삼아서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팔복을 비추어 보아서 자기가 어떻게 그 은혜에서 미끄러졌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팔복의 사람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매 순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때에만 팔복의 사람으로 머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간 삶의 발자취는 그의 사람됨의 발자취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온전하게 살 수 없고, 온전하게 살지 않고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온전하게 된 것만큼만 살 수 있고, 온전하게 산 것만큼만 온전하게 될 수 있으니, '사람됨'과 '살아감'은 하나인 것입니다. 팔복의 사람이 복이 있지만 우리가 언제나 팔복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팔복의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제목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II.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신자들을 기도로 훈련시키십니다. 한 사람이 기도하기를 결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뭔가 필요를 느껴야 됩니다. 내가 너무 갖고 싶은데 그것이 없거나, 너무나 그렇게 되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의 필요를 느낍니다. 그게 기도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짜 기도생활을 하시기 위해서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두 번째는 그것을 능히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A. 필요를 아심
첫째는 필요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필요에 민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9절부터 10절까지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9-10)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떡과 생선을 달라고 합니다. 부모는 그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육신의 부모는 아이가 말할 때까지 그 필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간구하기 전에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신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 응답의 대가가 아닙니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교회에 왔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양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어제 오늘 아침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입고 있는 이 옷은 하나님이 주신 수입으로 사 입기는 했지만, 외투 한 벌을 달라고 목매어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넉넉히 사 입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것 중 대부분은 기도를 통해 온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기도하기 전에도 그것이 필요한 줄을 아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우리는 있는 것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질문을 하나 해봅시다. 여러분에게 자녀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 자녀가 기어 다니면서 무엇을 달라고 요청할 때, 그때부터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될 때까지 뭐든지 아이가 달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주면 혹은 아이가 부족한 것이 없게 생활을 하면 그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건 좋은 교육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은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라는 사실을 가르쳐줘야 됩니다.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닫게 만들어 줘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학습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올바른 자녀 교육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주시는데 어떤 것들 우리가 꼭 갖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써 받게 하십니까? 왜 필요한 것을 위해 간구하게 하십니까? 더욱이 그것을 간절히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까지는 응답해 주시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걸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은 모든 것을 가지고 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있는데 모든 걸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아이가 망가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 필요하고 갖고 싶어 하는 아무것도 안 주는 방식으로 그 아이를 훈련시킬 수 있습니까? 그거는 아예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교육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백 가지 필요한 것 중 아흔여덟 가지를 다 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갖고 싶어 하고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은 종종 안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를 아이에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가짓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모든 것을 가지고 그렇게 아이를 다룰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다루면 되는 것입니다. “엄마, 나 치약이 떨어졌어 치약 좀 사줘.” 그런 것은 줍니다. 그런데 만약에 “엄마, 나 80만 원짜리 게임기 하나 사줘.” 그럴 때 치약을 사주듯이 사주면 그 아이는 망가집니다. 고가의 물건을 갖고 싶어 할 때 그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걸 갖고 싶어 할 때는 안 주기도 하고 늦추기도 하고 혹은 어떤 조건을 내걸면서 아이에게 그것이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엄마, 나 치약 하나 사줘.” 그러는데 “네가 기말고사에서 100점 맞으면 사줄게.” 그건 엄마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엄마 나 인강 보는데 아이패드가 필요해.” 그럴 때는 “그래 사줄게.” 그럼 안 됩니다. 아이의 훈련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간절히 매달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씩씩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자기의 힘으로 벌어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사람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교만해지기 쉬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것들은 기도 응답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있어야 할 줄을 알고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간절히 기도하게, 더 간절히 기도하기 전까지는 주실 듯 주실 듯 안 주십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훈련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절은 말합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 1:2)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으려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합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는 희미하게 생각은 나지만 그러나 그게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갖고 싶은 것을 내가 얻고, 사고 싶은 것을 내가 사고, 벌고 싶으면 내가 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주님께 받으려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는 순간에 하나님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보면 자기가 간절히 기도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할 수 없을 때는 왜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기도하는데 기도가 꽉 막히고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그때 비로소 '내가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어버렸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디서 떨어진 거지?'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거지?' '왜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사람이 된 것일까?'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양심은 요동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거울이 되어서 우리 자신을 비추어 줍니다. 이것을 기도를 통해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기도만큼 우리를 훈련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동안 끊임없이 기도 제목을 주십니다. 그 기도 제목 속에서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가 기도하지 않은 많은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진짜 필요한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으로 마음에 품으면 그것을 진짜 갖고 싶은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품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열정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오직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만 얻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갖고 싶은 것은 있는데 그걸 그냥 내가 어디서 얻어보겠다고 생각하면 그는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걸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얻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그렇게 마음이 확정되고 나면 그다음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언어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아주 고통스러운 자기 깨어짐의 과정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이유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평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쇄신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꾸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세 단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두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대부분의 것들은 기도 없어도 주셨고 아주 일부분만 기도가 아니면 안 주시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B. 좋으신 주님
두 번째는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한 성품에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선하심이란 무엇입니까? 선하심이란 아무 대가 없이 그분의 성품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을 관대하게 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하나의 공식이 성립을 하는 것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러므로 나에게 나쁜 일을 행하실 수 없다." "그것이 나빠 보이는 것은 내가 악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하신 그분을 거스르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선하시기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좀 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봅시다. 자, 맨 먼저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러므로 나에게 나쁜 일을 행하실 수 없다."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입니다. 나쁜 일을 행하시지 않는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 내게 나빠 보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짜 하나님이 나쁘기 때문에 나쁘게 여겨지는 게 아니라 내가 악하기 때문에 선한 것이 미워 보이고 악한 것이 예뻐 보이는 데서 오는 오류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자기 고집입니다.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했고, 그것이 우리의 기도를 막은 것입니다.
그다음 문장을 봅시다. "내가 선하신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선하시기 때문에 나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자, 걸어갑니다. 사부작사부작 아주 천천히 걷습니다. 그러다가 앞을 못 보고 전신주에 살짝 부딪혔습니다. 그러면 조금 머리가 띵합니다. 그런데 아주 힘차게 걷습니다. 그러다 한눈을 팔다가 전신주에 크게 부딪칩니다. 그러면 머리에 혹이 날 수도 있고 혹은 찢어져서 피가 흐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전신주에 부딪힌 힘만큼 결국 자신에게 상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약에 선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타협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한 길을 걸어가는데도 일체의 고통이 없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선하시기 때문에 악한 길을 가려고 하면 언제나 고통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엔 예외가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고통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고통이 매우 큽니다. 그건 뭐냐 하면 자기 악이 매우 크다는 그 크기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오래 지속됩니다. 그건 뭐냐 하면 자기가 아주 강한 힘으로 꺾이지 않으면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뒤집어서 말하면 어 내가 악을 행할 때의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이 오래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선하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보십시오. 탕자의 비유를 기억하십시오.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쁜 일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주셔서 후히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자 그는 결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잠시 재산을 탕진하는 동안에는 즐거움 때문에 고통을 잊어버렸지만, 그것은 상처 난 사람이 몰핀을 맞은 것과 같은 효과였습니다.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은 끝날 리가 없었습니다. 남의 나라 땅에서 돼지나 치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가 그 처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해결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그 선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악을 행할 때 우리는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을 지속할 때 고통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치열할 때 결국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당할 때에 겪는 고통이 그런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가 한 가지 굳게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 그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선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바로 이런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시 27:12-13) 아멘.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시 27:13) 수많은 원수들과 거짓 증거로 시인에게 형벌을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하나님의 한 성품을 굳게 믿었습니다. 내가 죽은 자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볼 것이다. 이 사실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자하심과 함께 이스라엘의 영원한 찬송 제목이었습니다. 시련을 겪던 시인들은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깊이 체험했습니다.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며 그 악인이 악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이 선하신 분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또 악을 행하고 스스로 고통을 받다가 회개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임을 깊이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할 제목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은혜입니다.
(찬양)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간절히 기도할 제목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은혜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지 않고는 결코 간절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주시지만 때로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기도의 제목을 만나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격했던 때는 항상 기도에 응답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을 받기 전에는 반드시 고통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도 제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동안에 여러분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은혜의 감격이 기도 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문제를 바라볼 때 결국 믿음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이 모든 것들은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두 가지 사실만 놓치지 않으면 반드시 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내게 나쁜 일을 행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이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신다. 이 사실을 믿고 좋으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C. 구할 때 주심
마지막 세 번째는 구할 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게 감격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그 기도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날개 그늘 아래서 살아야 할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필요한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안 주십니다. 그래서 간절히 오래도록 마음을 다하여 기도한 후에 응답으로 주십니다. 많은 것을 주님께로부터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고마움을 잊어버립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생기고 쉽게 해결되지 않아서 기도 제목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걸 안 주시겠다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많은 것을 기도 없이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7장 8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8) 선하신 하나님은 아까운 것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원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덜어내도 하나님에게는 자원이 축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구하는 이에게만 주십니다. 찾는 이만 발견하고 두드리는 이에게만 열어주십니다. 이로써 자기가 받은 모든 것들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셨지만, 주신 것을 의지하는 대신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범사에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은 불꽃처럼 치열하게 타오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니다. 그래서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이런 사람은 삶의 모든 방면에 있어서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마음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하나님과 충만한 교제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많은 시련과 역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특별한 계기입니다.
단 거기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만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시인들이 언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까? 악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고, 배신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목격했고, 추하고 더러운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더러운 것이 추한 것으로 남지 않고, 배신하는 것들이 배반으로 남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그 상황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에게 악을 행하실 수 없으며, 반드시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간절히 하나님 앞에 구하면 하나님은 응답해 주실 것이고, 그렇게 응답을 받은 우리는 받아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습니다. 그 선물은 우리에게 물건 자체를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보낸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를 위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큰 선물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큰 선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선물은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이 없는데도 주는 것은 그건 선물이 아니라 뇌물입니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건 선물이 아닙니다. 그 선물에 감동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그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자기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선물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우리의 믿음이 좋아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거절하시는 것 같다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에 감격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받은 것 때문에 좋은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느끼게 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마음, 그리고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과 같은 나를 가엾이 여기신다는 그 믿음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찬송)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난제를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가 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강퍅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내 자신이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내 마음을 깨뜨려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의지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얻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간절히 구하는데도 얻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응답이 없는 것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기도하면 언제나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 원하는 대로 주시든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더 치열하게 타오르게 하시든가, 아니면 거절하심으로 우리가 잘못된 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우리의 삶을 바꾸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산 것은 아무 흔적이 남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한 것은 결코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남아서 우리에게 감화를 주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아멘.
III. 적용과 결론
우리가 무엇을 이제 두려워하겠습니까? 이제껏 우리는 이미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때마다 하나님을 만나서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 역경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 마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계셔서 당신의 선을 보이십니다. 당신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